성공을 새기고 떠나는 당신들을 바라봅니다 (Admiring Those Who Leave a Mark of Success and Move On)
본교를 다니며 짧게는 2년, 길게는 십여 년 동안 여러분은 어떤 캠퍼스 생활을 보내셨나요? 고요한 도서관에서 열심히 끄적거리던 노트 한 페이지, 달빛 아래 좋아하던 사람과 마셨던 술 한 잔, 현미경으로 이상하게 찍었던 신경 세포 사진 한 장…. 동기들과 함께 설레었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시간이 됐네요. 앞으로 여러분이 펼쳐 나갈 길은 어떤 모습일까요.
생물과는 거리가 멀던 제가 ‘뇌’라는 것을 연구한 지 벌써 3년이 흘렀습니다. 연구가 정말 재밌는 것인지, 연구하는 나 자신에 심취한 것인지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이 흘렀네요. 신기하게도 많은 후배가 1년 반이 지나면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바보 같은 제게 이 공간은 어울리지 않는 곳일까요?”
선배들에게 실험을 열심히 배우고 나면 나만의 실험을 구상해 매달 발표했습니다. 분명 이제는 다 안다는 자신감 아래 발표를 마치면 돌아오는 것은 교수님과 선배들의 부정적 질문뿐. 악에 받쳐 선배에게 질문하려 하면 선배의 발표는 너무도 완벽해 보였고, 노벨상 수상을 눈앞에 둔 것 같았던 내가 언제나 하찮고 볼품없이 보였습니다. 선배들만 봐도 나보다 3~4배는 오래 공부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도 않고 말이죠.
한번은 교수님께 잔뜩 혼나고 거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재미를 찾아 진학한 대학원이었는데 어느새 실적에만 목매는 내가 거울 속에 보였던 것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나를 위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남에게 잘 보이는 것만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 내 생각이 처음과 달라져서 대학원이 어울리지 않아 보였구나.’
엑스 재팬(X-Japan)의 《Art of Life》,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이라는 노래입니다. 화려한 오케스트라 선율에 가려진 어두운 가사와 분위기. 그 속에서 세상 모두가 끊임없이 괴롭히지만 메마르지 않고 피어있는 장미 한 송이. 작곡가이자 작사가인 요시키(Yoshiki)가 계속되는 성공 중 부상으로 드럼을 손에서 놓아야 했을 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스케치한 이 곡은 삶을 성찰하던 제게 너무 쉽게 스며들었습니다. 끝없는 물음과 진리를 찾기 위해 살아가는, 한계에 부딪혀 벽을 쌓지만 다시 부수고 나아가는, 뭉툭해져도 화사하게 피어오른 장미 한 송이야말로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지 않았나요?
작년에 다녀온 학회의 폐회식, 학회장님께서 식을 진행하며 전달한 말이 있습니다. “회사가 아닌, 자아 성찰의 공간인 대학에서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언제 용기를 얻어 한 발자국 나아가겠나요? 대학이야말로 기계도 망가뜨려 보고 실험도 실패해보는 실패의 장이지만 그 속에서 여러분들이 점점 대가(大家)의 길로 자신을 이끌고 있지 않을까요?” 후배들에게도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대학은 너의 성공만을 바라는 곳이 아니라고. 성장통 없는 성공은 오히려 너를 더 아프게 할 것이라고.
서울대학교라는 이곳에서 목표한 바를 모두 이루신 분도, 모조리 미끄러지신 분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제게 실패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다르지 않겠지요. 성공한 인생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꿈입니다. 남이 정의한 성공이 아닌 나만의 길. 함께 고뇌하고 노력했던 이 순간을 언제나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갑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 누구보다 자아 성장을 위해 노력한 당신들과 같이 나아갈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모든 선후배 여러분께 부족하지만 한마디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달려온 당신,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